견왕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이 빚어낸 중세 일본의 파격적인 록 오페라 판타지

2022년 극장가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견왕은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이단아이자 거장으로 불리는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이 연출을 맡아 제작 단계부터 엄청난 기대를 모았습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일본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록 음악과 파격적인 연출을 결합한 독보적인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시청자들은 고전적인 서사와 현대적인 감각이 충돌하며 뿜어내는 에너지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실존 인물 견왕을 모티브로 하여 상상력을 덧입힌 이야기는 기존의 정적인 시대극 틀을 완전히 깨부수며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신체적인 기형을 예술적인 퍼포먼스로 승화시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신체적 결함을 예술로 승화시킨 천재 예능인 이누오와 소년 토모나의 운명적인 만남

견왕 줄거리는 무로마치 시대 초기라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이누오는 태어날 때부터 신체 여러 부위가 기형적으로 비틀린 채 태어나 가족들에게조차 괴물 취급을 받으며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뒤틀린 신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이용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한편 또 다른 주인공인 소년 토모나는 어린 시절 바닷속에서 저주받은 칼인 초나기검을 건져 올리다 아버지를 잃고 자신 또한 시력을 잃게 된 비운의 인물입니다. 토모나는 비파 법사가 되어 전국을 유랑하던 중 우연히 이누오와 마주하게 됩니다. 두 소년은 서로의 장애와 아픔을 한눈에 알아보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친구가 됩니다. 이누오의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춤과 토모나의 영혼을 울리는 비파 소리가 만나면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 탄생하기 시작합니다.

금기된 노래로 역사를 뒤흔든 두 소년이 펼치는 환상적인 공연의 서막

이누오와 토모나는 기존의 정형화된 공연 예술인 노가쿠나 비파 연주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나갑니다. 토모나는 이름을 토모이치로 바꾸고 화려한 옷차림과 파격적인 머리 모양을 한 채 길거리에서 마치 록 스타처럼 노래를 부릅니다. 이누오 또한 공연을 할 때마다 자신의 신체적 기형이 조금씩 치유되며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신비로운 현상을 경험합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승자인 아시카가 가문에 의해 역사에서 지워진 패자들 즉 헤이케 가문 영혼들의 억울한 사연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누오가 춤을 출수록 잊혔던 영혼들은 안식을 찾게 되고 이들의 공연은 삽시간에 민중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거대한 무대 장치와 불꽃 그리고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퍼포먼스는 중세 일본이 아니라 마치 현대의 대규모 콘서트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중세 일본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현대적 감각의 음악과 파격적인 연출력

견왕은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특유의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작화가 정점에 달한 작품입니다. 인물의 신체가 고무처럼 늘어나거나 형태가 왜곡되는 연출은 이누오의 기형적인 신체와 그가 느끼는 예술적 희열을 표현하는 데 최적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특히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연 장면들은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강렬한 일렉 기타 리프가 어우러져 시청자의 귀를 사로잡습니다. 비파를 전자기타처럼 연주하고 마이크 대신 소리 증폭 장치를 사용하는 등의 상상력은 시대극이라는 장르적 제약을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보기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빠른 템포와 화려한 색채 대비는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작중 묘사되는 민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예술이 가진 선동적인 힘과 치유의 기능을 동시에 보여주며 작품의 주제 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잊힌 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노래와 권력의 압박 속에 피어난 예술의 혼

공연이 유명해질수록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이들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요시미츠는 자신의 통치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역사를 하나로 통일하려 했으며 이누오와 토모나가 부르는 헤이케의 노래들이 민중을 동요시킬까 두려워합니다. 권력자는 이누오에게 더 이상 금기된 노래를 부르지 말고 자신들이 정해준 틀 안에서만 공연할 것을 강요합니다. 반면 토모나는 끝까지 진실된 노래를 멈추지 않으며 권력에 저항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가 직면하는 현실적인 압박과 자신의 신념 사이의 갈등이 심도 있게 다뤄집니다. 이누오는 자신의 신체를 완전히 회복하여 인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권력과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토모나는 목숨을 걸고라도 잊힌 영혼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합니다. 두 소년의 우정은 시대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시험대에 오르게 되며 이야기는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클라이맥스로 향합니다.

(※ 아래 내용에는 애니메이션 견왕의 결말과 관련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선택한 우정과 예술의 끝에서 마주한 진실

결국 토모나는 권력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노래를 부르다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이름과 이누오와의 우정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누오는 살아남아 쇼군 앞에서 공연하며 최고의 예능인으로서 명성을 누리지만 그 대가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파격적인 춤과 자유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는 권력이 허락한 정형화된 예술만을 선보이며 평생을 보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가 불렀던 헤이케 영혼들의 이야기는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현대에 이르러 영혼의 상태로 떠돌던 토모나와 이누오는 마침내 재회합니다. 이누오는 화려했던 명성보다 토모나와 함께 자유롭게 노래하던 시절이 진정으로 행복했음을 깨닫고 두 영혼은 다시금 신명 나는 춤판을 벌이며 영원한 안식에 듭니다. 이는 육체적 죽음이나 사회적 말살보다 무서운 것은 망각이며 진정한 예술은 시간을 초월해 영혼을 잇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마무리입니다.

파격적인 실험 정신이 돋보이지만 대중성 측면에서 느껴지는 명확한 호불호

견왕은 분명히 한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보기 드문 독창적인 수작입니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천재적인 연출과 밴드 여왕벌의 보컬 아부짱이 맡은 이누오의 목소리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실제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확실하게 존재합니다. 우선 음악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곡의 스타일이 매우 강렬하고 독특하여 일반적인 팝이나 전형적인 애니메이션 음악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중반부 이후 공연 장면이 반복되면서 서사적인 진행이 다소 정체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3D와 2D가 혼합된 작화 방식 역시 유아사 감독 특유의 뭉개지는 듯한 필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호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기존의 틀에 박힌 애니메이션에 지루함을 느끼는 고등학생이나 예술적인 영감을 얻고 싶은 분들에게는 이보다 더 자극적이고 훌륭한 교과서는 없을 것입니다. 현실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견왕이 남긴 강렬한 비트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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