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아노하나 제작진의 재결합으로 전 세계를 눈물바다로 만든 화제작의 탄생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줄여서 '아노하나'는 눈물 버튼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그 전설적인 작품을 탄생시킨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과 오카다 마리 각본가 그리고 타나카 마사요시 캐릭터 디자이너가 다시 뭉쳐 2015년에 내놓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입니다. 개봉 당시 일본 현지에서는 비평가들의 찬사는 물론이고 일반 관객들에게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 작품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그 본질은 지극히 현실적인 10대들의 고민과 소통의 부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말 못 할 고민과 짝사랑의 아픔 그리고 타인에게 진심을 전하는 것의 어려움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며 청춘 군상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배경 작화와 베토벤의 비창, 오버 더 레인보우 등 클래식 명곡을 편곡하여 삽입한 OST는 이야기의 감동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완벽하게 기능합니다. 말 한마디의 무게와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울림을 선사합니다.
성의 옥상에서 목격한 아버지의 외도와 달걀 요정의 저주로 시작된 비극
이야기는 주인공 나루세 준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됩니다. 수다쟁이에 꿈이 많았던 소녀 준은 산 위 언덕에 있는 몽환적인 성을 동경했습니다. 그곳은 사실 러브호텔이었지만 어린 준은 그곳을 무도회가 열리는 진짜 성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준은 그 성에서 아버지가 낯선 여자와 함께 나오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준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아빠는 성에 있는 왕자님 같았다"라고 해맑게 이야기합니다. 이 한마디는 가정의 평화를 산산조각 냅니다. 아버지는 짐을 싸서 집을 나가며 준에게 "이건 다 너 때문이다. 너는 말만 하면 남을 불행하게 하는구나"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충격에 빠진 준 앞에 달걀 요정이라는 존재가 나타나 다시는 남을 상처 입히지 못하도록 입을 봉인해 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준은 그날 이후 말을 하려 하면 배가 아픈 저주에 걸려 마음의 문을 닫고 침묵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준은 반에서 존재감 없는 아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말 대신 휴대전화 문자로만 소통하며 철저히 타인과 거리를 둡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의 강압적인 지시로 '지역 교류회' 실행 위원으로 뽑히게 됩니다. 함께 뽑힌 멤버들은 준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이들입니다. 무심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카가미 타쿠미, 타쿠미와 중학교 시절 연인 관계였으나 지금은 어색해진 모범생 니토 나츠키, 그리고 야구부 에이스였으나 팔 부상으로 좌절하여 거친 태도를 보이는 타사키 다이키까지. 서로 접점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이 네 명이 모여 교류회에서 발표할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아이들은 말을 못 하는 준이 위원이 된 것에 불만을 품고 타사키는 준에게 "말도 못 하는 게 무슨 위원이냐"라며 모욕을 줍니다.
하지만 타쿠미는 달랐습니다. 그는 준이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배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에게 뮤지컬을 해보자고 제안합니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노래에 담으면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타쿠미의 말은 준의 굳게 닫힌 마음을 두드립니다. 준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타쿠미는 그 이야기에 곡을 붙여 뮤지컬을 완성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삐걱거리던 반 친구들도 준의 용기 있는 모습과 타쿠미의 리더십 그리고 점차 마음을 여는 타사키와 나츠키의 변화를 보며 하나로 뭉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청춘의 向う脛(정강이)'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성공시키기 위해 땀 흘리며 연습에 매진합니다. 이 과정에서 준은 자신을 이해해 주고 노래할 수 있게 도와준 타쿠미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 아래 내용에는 영화의 결말과 등장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축제 전날 밤의 엇갈림과 폐허가 된 러브호텔에서의 처절한 외침
뮤지컬 공연을 하루 앞둔 날 밤 사건이 터집니다. 준은 타쿠미에게 고마움과 설렘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그를 찾아갔다가 타쿠미와 나츠키가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나츠키는 타쿠미에게 과거의 오해를 풀며 여전히 그를 좋아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타쿠미 역시 나츠키를 향한 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충격을 받은 준은 자신의 마음이 갈 곳을 잃었다고 느끼며 도망칩니다. 공연 당일 준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고 반 아이들은 패닉에 빠집니다. 타쿠미는 준이 어디에 있을지 직감하고 그녀를 찾아 나섭니다. 타쿠미가 향한 곳은 이제는 폐허가 된 옛 러브호텔 건물이었습니다.
그곳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던 준은 타쿠미를 보자마자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가식적인 놈", "너 때문에 헛된 희망을 품었다"라며 독한 말들을 쏟아냅니다. 말을 하면 배가 아픈 고통 속에서도 준은 멈추지 않고 비명을 지르듯 저주와도 같은 말들을 내뱉습니다. 타쿠미는 준의 모든 말을 묵묵히 받아주며 그녀가 마음속 응어리를 모두 토해낼 때까지 기다립니다. 모든 것을 쏟아낸 준에게 타쿠미는 "나를 욕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며 그녀의 고통을 감싸 안습니다. 그리고 준은 마지막으로 "너를 좋아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타쿠미는 "고마워. 하지만 나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라며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실연의 아픔을 겪었지만 준은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로 진심을 전했다는 해방감을 맛봅니다.
타쿠미와 준은 학교로 돌아옵니다. 이미 공연은 시작되어 나츠키가 준의 대역으로 무대에 올라 연기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2막이 시작될 무렵 무대 뒤가 아닌 관객석 입구에서 준이 등장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점차 힘차게 노래를 시작합니다. 그녀가 부르는 '나의 목소리(Watashi no Koe)'는 식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특히 객석에 앉아 있던 준의 어머니는 딸이 겪었을 고통과 성장을 지켜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준의 목소리에 맞춰 반 친구들은 합창을 하고 뮤지컬은 대성공을 거둡니다. 달걀 요정의 저주는 사실 준 스스로가 만들어낸 마음의 감옥이었음이 밝혀지고 그녀는 이제 노래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의지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인연의 시작과 현실적인 성장이 주는 긴 여운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후 학교 옥상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타쿠미와 나츠키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다시 가까워진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타사키가 준에게 다가갑니다. 처음에는 준을 가장 무시했던 타사키였지만 뮤지컬 준비 과정을 통해 그녀의 순수함과 열정에 반하게 된 것입니다. 타사키는 얼굴을 붉히며 준에게 "네 이름은 나루세 준이지?"라고 묻고 앞으로 계속 이름을 불러도 되냐며 서툴게 고백합니다. 준은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영화는 뻔한 로맨스의 공식을 깨고 각자의 위치에서 한 뼘씩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비추며 막을 내립니다.
화려한 작화와 감동적인 음악 뒤에 숨겨진 현실적인 호불호 요소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분명 잘 만든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입니다. 작화 퀄리티는 A-1 Pictures의 명성답게 수려하며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은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탁월하게 묘사합니다.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메인 테마곡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 만큼 강력한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또한 말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노래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는 설정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맞물려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모든 관객을 만족시키기에는 몇 가지 호불호 요소가 존재합니다. 가장 큰 논쟁거리는 결말의 커플링입니다. 영화 내내 준과 타쿠미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기에 당연히 두 사람이 이어질 것이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타쿠미의 거절과 타사키와의 연결은 다소 당혹스럽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연애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과 서사적인 배신이라는 평으로 극명하게 갈립니다. 또한 '달걀 요정'이라는 소재가 실제 판타지가 아닌 주인공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환영이라는 점은 이야기의 개연성을 높여주지만 판타지 장르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후반부 뮤지컬 장면이 다소 길게 배정되어 있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진 힘은 '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는 데 있습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가둘 수도 있고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소통이 부재한 현대 사회에 큰 울림을 줍니다.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어른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공감 가고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임은 분명합니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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