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안에 십자가와 세피로트의 나무 그리고 창세기의 이름들을 잔뜩 밀어 넣은 작품이 있다면 단연 신세기 에반게리온일 것입니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하면 화려한 종교적 이미지에 압도당하기 쉽습니다 사도가 죽을 때마다 하늘에 십자가 모양의 빛이 터지고 등장인물의 이름은 아담과 릴리스이며 최종 병기의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에서 따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 상징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겉모습은 신학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독과 소통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이토록 많은 기독교적 장치를 동원했으면서도 정작 신학적 해답은 주지 않았을까요 그 답을 세피로트의 나무부터 인류보완계획까지 하나씩 따라가며 찾아보겠습니다
아담과 릴리스 창세기를 뒤집은 두 존재
작품의 근간이 되는 설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에반게리온 세계관에는 아담과 릴리스라는 두 존재가 있습니다 아담은 지구에 최초로 태어난 생명체이며 그 이름은 성경 속 최초의 인간에서 따왔습니다 생명의 열매를 지니고 태어난 사도들은 모두 이 아담의 자손입니다 반면 릴리스는 아담과 대립하는 위치에 있는 또 다른 생명의 씨앗으로 인류의 기원이 되는 존재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릴리스라는 이름이 성경 정경에는 등장하지 않고 유대교 전승 속에서 아담의 첫 번째 아내로 언급되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즉 안노 감독은 성경 텍스트 자체보다는 그 주변부에 있는 유대교 신비주의 전승까지 폭넓게 끌어와 세계관을 구성했습니다
또한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세피로트의 나무라는 상징물은 아담이 성경 속 아담이 아니라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에서 말하는 아담 카드몬이라는 원형적 인간에 가깝다는 해석에 힘을 실어줍니다 사도가 총 열여덟 개체로 설정된 것 역시 카발라의 세피로트 개념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은 성경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주의 전통 전체를 재료로 삼아 새로운 신화를 조립한 것에 가깝습니다 인류가 릴리스의 후손이면서도 아담의 후손인 사도들이 원래 지구의 주인이었다는 설정은 성경의 선악 구도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침입자로 재정의하는 전복적인 발상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지점은 사도들이 인간을 증오하는 이유가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래 지구의 주인이었던 자신들의 자리를 릴리스의 후손인 인류가 대신 차지하고 있다는 인식이 사도들의 공격성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인간의 시선에서 사도는 이유 없이 나타나 도시를 파괴하는 괴물처럼 보이지만 사도의 입장에서는 인간이야말로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은 침략자인 셈입니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나뉘는 전형적인 성경 서사와 달리 에반게리온은 누가 원래의 주인이고 누가 침입자인지를 뒤섞어 놓음으로써 신화적 구도를 빌려오면서도 도덕적 정당성은 어느 쪽에도 온전히 부여하지 않습니다
사도가 죽을 때 터지는 십자가의 진짜 의미
에반게리온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도가 쓰러질 때마다 하늘에서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빛이 폭발하듯 터지는 연출입니다 이 장면이 워낙 강렬해서 많은 시청자들이 이것이 심오한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른 해석도 존재합니다 이 십자가 형상은 극 후반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사람들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하나로 모이는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는데 이는 특정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연출적 장치에 가깝다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실제로 안노 히데아키는 이 작품이 대성공을 거둔 뒤에도 온갖 기독교적 요소와 은유가 뒤섞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감독 본인은 신학을 전달하려는 목적보다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이질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이러한 상징들을 차용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서양 시청자에게는 낯설지 않은 종교적 도상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낯선 틀 안에 놓이면서 오히려 신비롭고 불길한 느낌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낸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신의 구원을 상징하기보다 죽음과 소멸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사건을 낯설게 만드는 미장센으로 기능한다고 보는 편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 적절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프닝 영상에서 제목이 등장하기 직전 화면이 붉게 물들며 십자가 형태로 전환되는 연출이나 사도의 죽음마다 반복되는 십자가 이미지는 모두 같은 미학적 계보 위에 있습니다 우주의 탄생을 암시하는 도입부부터 개별 생명체의 소멸까지 십자가라는 동일한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작품 전체에 통일된 종말론적 분위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학적 정합성을 추구했다기보다 시청자의 무의식에 각인되는 하나의 시각 언어를 만들어낸 것에 가깝습니다
롱기누스의 창과 인류보완계획이라는 이름의 무게
에반게리온에는 롱기누스의 창이라는 무기도 등장합니다 이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 옆구리를 찔렀다고 전해지는 성경 속 창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작중에서는 릴리스를 봉인하는 용도로 지구에 꽂혀 있다가 나중에는 초호기가 각성하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는 등 이야기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하는 핵심 소재입니다 종교적 유물의 이름을 병기에 그대로 붙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기독교 도상을 차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신학적으로 무거운 개념은 역시 인류보완계획입니다 이는 네르프와 제레라는 조직이 비밀리에 추진하던 계획으로 모든 인류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의 존재로 융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사도와 인류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서드 임팩트라는 대재앙을 막기 위한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 개개인이 가진 고독과 타인과의 단절이라는 문제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해소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의 자아가 하나로 녹아든다면 더 이상 상처받을 일도 외로울 일도 없다는 발상은 언뜻 구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무서운 발상이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인류보완계획은 종교적 구원의 이미지를 빌려오면서도 정반대의 질문을 던집니다 진정한 구원이란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각자가 상처를 안고서도 개별적인 존재로 남는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안노 감독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은 채 신지라는 소년의 선택에 결말을 맡깁니다 종교적 상징을 잔뜩 동원해놓고 정작 마지막에는 개인의 심리적 선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는 점이야말로 이 작품이 신학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인간 심리를 다루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스포일러 주의, 결말이 상징을 배신하는 방식
지금부터는 작품의 결말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므로 아직 완결까지 보지 않으신 분들은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극 후반부 릴리스는 이카리 신지의 어머니이자 파일럿인 아야나미 레이와 융합하며 거대한 형상으로 변화합니다 이후 검은 달과 접촉하여 서드 임팩트를 일으키고 전 인류의 경계를 해제시키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겉모습만 보면 그야말로 성경의 종말론적 심판을 연상시키는 장대한 스펙터클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사건의 방아쇠는 압도적인 신학적 섭리가 아니라 신지가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었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이 지점이 에반게리온이 기존의 종교적 서사와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부분입니다 세피로트의 나무와 롱기누스의 창 아담과 릴리스라는 거대한 신학적 장치들을 모두 동원했음에도 결국 이야기의 최종적인 열쇠는 한 소년이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가라는 극히 사적인 문제로 귀결됩니다 십자가가 뜨고 세상이 끝날 듯한 광경이 펼쳐지지만 그 끝에서 제시되는 것은 신의 심판이 아니라 신지가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결말은 종교적 상징을 화려하게 전시한 뒤 결국 그 상징을 배신하며 지극히 인간적인 결론으로 회귀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한 총평 상징은 화려하지만 설명은 불친절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기독교와 유대 신비주의 상징을 다루는 방식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익숙한 종교적 기호를 낯선 맥락에 배치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원초적인 불안과 경외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연출력은 지금 봐도 놀랍습니다 아담과 릴리스라는 설정 하나로 인류의 기원과 사도의 정체성 그리고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가지는 근원적인 죄의식까지 함축적으로 담아낸 구성력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다만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한 것도 사실입니다 세피로트의 나무나 롱기누스의 창 같은 용어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 등장하고 시청자가 스스로 관련 지식을 찾아보지 않으면 장면이 주는 시각적 충격 이상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상징들이 정교한 신학적 논리 위에 세워졌다기보다 감독 개인의 취향과 미학적 선택에 가깝다는 점을 알고 나면 다소 허탈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화려한 종교적 포장 안에 담긴 이야기가 결국 한 개인의 우울과 고독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주제라는 사실은 이 작품의 강점이자 동시에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징과 개인 서사를 이만큼 대담하게 뒤섞은 작품은 흔치 않으며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삼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다시 이야기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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