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이 사라진 자리 그 공백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데스노트를 처음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1부는 명작이고 2부는 아쉽다는 평가입니다. 그 경계선에 있는 사건이 바로 L의 죽음입니다. 라이토와 L이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묘하게 신뢰를 쌓아가던 그 긴장감은 데스노트라는 작품을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체인으로 묶여 함께 생활하던 장면이나 테니스를 치며 서로의 속을 떠보던 장면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그 축이 사라지고 니아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익숙했던 라이토와 L의 심리전 대신 낯선 얼굴을 새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데스노트 후반부에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단순히 새로운 캐릭터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캐릭터가 등장하는 방식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L은 초반부터 차근차근 존재감을 쌓아온 인물이었지만 니아는 사전 설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등장해 곧바로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옵니다. 원작 만화보다 분량이 짧은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급격한 전환이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집니다. 결국 데스노트 후반부를 둘러싼 논란의 출발점은 L이라는 캐릭터가 남긴 공백을 니아가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는 인상에서 시작됩니다.
니아의 추리가 추리가 아니라 관심법처럼 보인 이유
데스노트 후반부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비판은 니아의 추리 과정입니다. L은 논리적인 근거를 하나씩 쌓아가며 결론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청자가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함께 추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반면 니아는 애니메이션판에서 그 과정이 대폭 축약되어 나옵니다. 특히 니아가 미카미 테루를 새로운 키라 대행자로 지목하는 장면은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입니다. 여러 화면을 훑어보다가 갑자기 미카미를 짚어내는 연출은 근거보다는 직감에 의존한 것처럼 보입니다. 만화 원작에서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그 설명이 크게 줄어들면서 시청자에게는 그냥 답을 맞춘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여기에 라이토가 2대 L이자 키라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도 비슷한 지적을 받습니다. 아이자와가 SPK에 정보를 넘기는 장면이 단순화되면서 니아가 결론에 이르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보이는 것입니다. 추리물에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가장 중요한 재미인데 그 과정이 생략되면 시청자는 결과만 통보받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니아의 활약을 두고 실력보다는 우연과 작가의 편의에 의존했다는 이른바 박수무당설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것이 니아라는 캐릭터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애니메이션 각색의 한계인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카미와 멜로 그리고 조연들의 서사가 지나치게 축소됐습니다
데스노트 후반부의 또 다른 약점은 조연들의 서사가 원작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으로 멜로는 니아와 함께 L의 후계자로 자란 인물로 원작에서는 그 나름의 사연과 고집스러운 성격이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분량 문제로 멜로의 서사가 크게 축약되어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하는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장면들이 생깁니다. 미카미 테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검사 출신으로 키라의 사상에 완전히 동조하는 광신도라는 설정 자체는 매력적입니다. 실제로 이 캐릭터를 좋게 평가하는 시청자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 치밀한 인물이 미행조차 경계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캐릭터의 일관성에 균열이 생겼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이는 니아 쪽 서사를 돋보이게 하려는 전개상의 필요 때문에 미카미의 캐릭터가 다소 희생된 결과로 보입니다. 야가미 소이치로가 멜로 소탕 작전에서 사망하는 장면 역시 애니메이션 총집편에서는 통째로 생략되면서 뒷이야기와의 연결이 어색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결국 후반부에서 벌어지는 많은 논란은 니아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조연의 서사를 함께 압축해야 했던 구조적인 한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속도를 내야 했던 제작진의 선택이 여러 인물의 개연성을 갉아먹은 셈입니다.
라이토와 L 니아 성우들의 열연이 후반부를 그나마 지탱했습니다
이야기 구조에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성우들의 연기는 데스노트 후반부에서도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야가미 라이토를 연기한 미키 신이치로는 정의감에 불타는 모범생에서 점점 광기 어린 절대자로 변해가는 모습을 목소리 하나로 설득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특히 궁지에 몰렸을 때 흔들리는 감정과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오가는 연기는 후반부에서도 여전히 몰입도를 높이는 힘이었습니다. L을 연기한 카펠슈니크 죠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에도 회상 장면을 통해 존재감을 남기는데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예리한 말투가 라이토와의 대비를 계속 상상하게 만듭니다. 새로 등장한 니아를 연기한 후지와라 케이지는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톤 속에 서늘한 확신을 담아내면서 캐릭터가 가진 이질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냈습니다. 세 배우의 연기력 자체는 부족함이 없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다만 대본과 연출이 이들의 연기를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좋은 연기가 있어도 그 연기를 살릴 만한 서사적 여유가 부족했다는 점이 데스노트 후반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입니다.
결말까지 살펴보면 무너졌다는 평가가 과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결말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아직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데스노트의 결말은 라이토가 자신이 만든 규칙에 스스로 걸려 최후를 맞이하는 과정으로 마무리됩니다. 니아는 라이토가 메모를 조작할 수 있는 특수한 종이를 이용해 데스노트 소유주 확인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이를 역이용해 함정을 팝니다. 결국 라이토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것을 깨닫고 마츠다에게 총을 맞은 뒤 창고에서 류크를 향해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한때 세상을 심판하겠다며 신처럼 굴었던 인물이 마지막에는 초라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으로 끝나는 이 장면은 지금까지도 데스노트를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이 결말이 강렬했기 때문에 후반부 전체를 무너졌다고 평가하는 것은 과하다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중간 과정에서 개연성이 흔들린 장면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라이토라는 인물이 어떻게 파멸하는가를 보여주는 결말 자체는 여전히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후반부가 완전히 무너졌다기보다는 과정은 흔들렸지만 결말에서 다시 중심을 잡았다고 보는 시각도 충분히 성립할 수 있습니다.
결국 데스노트 후반부는 무너진 것이 아니라 다르게 흔들린 것입니다
데스노트 후반부에 대한 무너졌다는 평가는 절반은 타당하고 절반은 과장되어 있습니다. 니아의 추리 과정이 지나치게 축약되고 조연들의 서사가 원작보다 부실해진 것은 분명한 약점입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가 가진 분량의 제약이 원작보다 더 급하게 이야기를 몰아가면서 개연성에 여러 구멍을 만들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라이토라는 인물이 파멸해가는 큰 줄기와 그 결말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후반부에서도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좋은 연기와 강렬한 결말이 구조적인 약점을 어느 정도 상쇄해준 셈입니다. 결국 데스노트 후반부는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하기보다는 1부가 쌓아 올린 기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쉬워 보인 것이라는 평가가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명작의 그림자 속에서 조금 부족했던 후반부였을 뿐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데스노트는 여전히 손에 꼽히는 완성도를 가진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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