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애니메이션의 탈을 쓴 채 인간의 마음을 정면으로 파고든 문제작
에반게리온은 1995년 첫 방영 이후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중 하나입니다 겉으로 보면 거대 로봇이 정체불명의 적과 싸우는 전형적인 로봇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관계의 단절과 자기혐오 소통에 대한 두려움을 정면으로 파고든 심리극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전설로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결말입니다 TV판 마지막 두 화와 이를 다시 그린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나 완결된 신극장판까지 에반게리온은 매번 다른 방식으로 결말을 제시했고 그때마다 팬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였는지를 두고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에반게리온이 던진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각 결말이 서로 어떻게 다른 답을 내놓았는지 함께 정리해보겠습니다
세컨드 임팩트 이후 살아남은 아이들의 이야기
이야기의 배경은 서기 2000년 남극에서 벌어진 세컨드 임팩트라는 대재앙 이후의 세계입니다 실제로는 정체불명의 존재와의 충돌로 발생한 이 사건은 비밀 조직 제레에 의해 운석 충돌로 조작되어 알려집니다 이후 해수면 상승과 전쟁 경제 붕괴가 이어지며 인류의 절반이 사라진 세계에서 십오 년 뒤 사도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인류는 이들에 맞서기 위해 생체 병기 에반게리온을 개발하고 아직 어린 십대 소년 소녀들을 파일럿으로 선발합니다 주인공 이카리 신지는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아버지 이카리 겐도의 부름을 받아 에바 초호기에 탑승하게 됩니다 신지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함께 탑승하는 레이와 아스카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결핍과 트라우마를 안고 있으며 이들이 로봇을 타고 싸우는 전투 장면보다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어긋나는 관계 자체가 극의 핵심 주제로 자리 잡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사도와의 전투라는 외형적인 서사보다 인류보완계획이라는 거대한 음모와 신지 개인의 내면이 극의 중심을 차지하게 됩니다
TV판 마지막 두 화가 남긴 파격
에반게리온이 전설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TV판 25화와 26화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인류보완계획이 실행되며 모든 인류가 하나로 융합되는 거대한 사건이 그려져야 했지만 제작 여건 문제로 인해 실제 방영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채워졌습니다 배경도 거의 없는 화면 위에 신지의 내면세계가 펼쳐지고 그가 타인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상징적으로 그려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은 신지를 향해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고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습니다 이 결말은 방영 당시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사도와의 전투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인류보완계획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결말은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이 처음부터 외적인 전투가 아니라 신지라는 한 인간의 내면을 다룬 이야기였다는 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그린 또 다른 결말
TV판 결말에 대한 팬들의 거센 반발 이후 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통해 외적인 사건을 다시 완성된 형태로 그려냅니다 이번에는 인류보완계획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가 시각적으로 구체화됩니다 모든 인류의 경계가 사라지고 하나로 융합되는 서드 임팩트가 그려지며 이는 개인이라는 존재가 갖는 고독과 상처를 근본적으로 없애버리려는 시도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신지는 결국 모두가 하나로 합쳐진 상태보다 상처받더라도 개별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편을 선택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신지와 아스카 단 둘만이 황폐해진 해변에 남게 되는데 이 장면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지금까지도 해석이 분분합니다 인류가 완전히 소멸하고 두 사람만 남았다는 해석부터 이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장면이며 실제로는 TV판처럼 사람들이 다시 원래의 개별 존재로 돌아왔다는 해석까지 다양하게 공존합니다 제작진조차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으면서 이 결말은 오히려 더 많은 논쟁을 낳았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결말이 궁금하다면 이 부분은 건너뛰어 주세요
이후 2007년부터 시작된 신극장판 시리즈는 완전히 새로운 결말을 향해 나아갑니다 초반에는 TV판과 유사한 흐름을 따라가지만 세 번째 작품인 Q에서부터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신지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갑작스럽게 세계에 복귀하면서 그가 알던 인물들과의 관계는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어긋나 있는 상태로 그려집니다 마지막 작품인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에서 신지는 마침내 아버지 겐도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오랜 갈등의 뿌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인류보완계획이라는 틀 자체를 완전히 걷어내는 방향으로 마무리됩니다 신지는 에반게리온이라는 존재가 없는 세계를 스스로 선택하고 이는 곧 등장인물들이 극 중에서 서로에게 작별을 고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레이와 아스카는 신지의 곁을 떠나고 그 자리에는 신극장판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물 마리가 함께하게 됩니다 이 결말은 안노 감독이 스스로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되며 실사 영상까지 삽입되는 파격적인 연출과 함께 이야기는 완전히 종결됩니다
결국 에반게리온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세 번의 결말을 관통하는 공통된 질문은 명확합니다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이 두려운 인간이 상처를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인류보완계획은 매번 다른 방식으로 그려지지만 근본적으로는 고통스러운 개별성을 버리고 하나로 합쳐져 상처받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유혹으로 기능합니다 그리고 매번 신지는 결국 그 유혹을 거부하고 불완전하더라도 자신으로 남는 길을 선택합니다 다만 그 선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작품은 끝까지 명확히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종교적 상징으로 해석하는 관점 심리학적으로 읽어내는 관점 심지어 오타쿠 문화 자체에 대한 자기반영적 비판으로 보는 관점까지 극단적으로 다른 해석들이 지금까지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이런 열린 해석은 작품의 매력이자 동시에 약점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완결된 설명을 포기한 서사는 보는 이에 따라 심오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불친절하고 자의적인 연출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영된 지 삼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을 낳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이 가진 독보적인 힘을 보여줍니다 결국 에반게리온은 명확한 답을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보는 사람 각자가 자신의 고독과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투영해 완성하는 이야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반게리온 #NeonGenesisEvangelion #인류보완계획 #신극장판 #결말해석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