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애니메이션계를 강타한 '저주' 열풍
2020년 10월 제작사 MAPPA가 '주술회전' 1기를 선보였을 때 그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동시대에 '귀멸의 칼날'이 비극 속 가족애라는 따뜻한 불꽃을 보여주었다면 '주술회전'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에서 태어난 '저주'라는 차갑고 어두운 심연을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첫 화부터 감각적인 오프닝과 엔딩 그리고 고퀄리티의 전투 작화는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현대 최강' 고죠 사토루라는 캐릭터가 보여준 압도적인 힘과 매력은 '주술회전' 신드롬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화려한 액션뿐만 아니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스타일리시하게 풀어내는 이 작품의 독특한 어두운 매력에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비극의 시작점 "올바른 죽음"
'주술회전'의 핵심 서사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질문은 바로 "올바른 죽음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이 질문은 주인공 이타도리 유지가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언에서 시작됩니다. "너는 강하니까 사람들을 도와라" 그리고 "타인에게 둘러싸여 죽어라"는 유언은 이타도리에게 하나의 강박적인 신념이 됩니다.
그는 타인의 '올바르지 않은 죽음' 즉 저주로 인한 비참하거나 외로운 죽음을 극도로 혐오합니다. 그리고 이 신념은 그를 최악의 선택으로 이끕니다. 주령에게 습격당한 선배들을 구하기 위해 그는 특급 주물 '양면 스쿠나'의 손가락을 망설임 없이 삼킵니다.
이 선택으로 이타도리 유지는 천 년 만에 부활한 '저주의 왕' 스쿠나의 그릇이 됩니다. 그는 주술계의 규정상 즉각 사형 대상자가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올바른 죽음'을 추구하던 소년이 자신의 죽음을 선고받으며 '주술회전'의 거대한 비극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립니다.
저주를 삼킨 소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궤도
이타도리 유지의 사형을 막아선 것은 주술고전의 교사 고죠 사토루였습니다. 그는 이타도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줍니다. 지금 바로 사형당하거나 아니면 세상에 흩어진 스쿠나의 손가락 스무 개를 모두 찾아 삼킨 뒤에 사형당하거나.
이타도리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후자를 선택합니다. 그는 '올바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적어도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저주를 먹고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입학한 도쿄 주술고전에서 그는 두 명의 동료를 만납니다. 주술 명가의 피를 이었지만 자신만의 정의를 찾는 후시구로 메구미 그리고 시골 출신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쿠기사키 노바라입니다.
'주술회전' 1기는 이 세 명의 1학년이 주술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특히 인간의 증오에서 태어난 특급 주령 '마히토'와의 만남은 이타도리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줍니다. 마히토는 이타도리의 눈앞에서 친구가 된 요시노 준페이의 영혼을 변형시켜 잔인하게 살해합니다. 이타도리는 처음으로 '이유 없는 죽음'과 '구할 수 없는 생명'을 마주하며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경험을 합니다.
최강의 균열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주술회전'의 핵심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기의 사건과 2기 '시부야 사변' 사이에 위치한 '회옥 옥절' 편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과거 이야기는 현시대의 적대 관계인 고죠 사토루와 게토 스구루가 왜 갈라섰는지를 보여줍니다.
과거 주술고전 시절 고죠와 게토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최강'으로 불리는 콤비였습니다. 하지만 '성장체' 아마나이 리코의 호위 임무에 실패하면서 두 사람의 길은 완전히 갈라집니다.
이 임무의 실패와 희생을 겪으며 고죠 사토루는 각성을 통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진정한 최강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가 됩니다. 반면 게토 스구루는 끝없는 고뇌에 빠집니다. 그는 강한 주술사가 약한 비주술사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순적인 현실에 절망합니다.
결국 게토는 "비주술사를 모두 죽이고 주술사만의 세상을 만든다"는 끔찍한 사상을 선택합니다. 그는 최악의 주저사(저주사)가 되어 고죠와 적대하게 됩니다. 게토의 이 선택은 훗날 '주술회전 0' 극장판의 백귀야행 사태와 '시부야 사변'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합니다.
절망의 서막 시부야 사변이 남긴 것
게토 스구루를 필두로 한 주령 집단과 이타도리 일행의 갈등은 2기 '시부야 사변'에서 정점을 맞이합니다. 주령들의 단 하나의 목적은 '주술회전' 세계관의 절대적인 힘의 균형추인 고죠 사토루를 봉인하는 것이었습니다.
※ 아래 내용에는 '주술회전' 애니메이션 2기 '시부야 사변' 편의 치명적인 스포일러와 원작의 주요 전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 10월 31일 시부야. 주령 집단은 대규모 테러를 일으켜 고죠 사토루를 함정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합니다. 고죠는 수많은 비주술사를 구하기 위해 영역 전개를 0.2초만 발동하는 등 압도적인 힘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적들은 그가 유일하게 망설였던 존재 죽은 친구 게토 스구루의 시신을 이용해 접근합니다. 고죠의 뇌가 게토를 인식한 그 짧은 순간 특급 주물 '옥문강'이 발동하며 최강의 주술사는 결국 봉인당하고 맙니다.
고죠 사토루라는 억제력이 사라지자 시부야는 문자 그대로 지옥으로 변합니다. 주술사들은 고죠를 구출하기 위해 시부야에 투입되지만 이는 모두 적들의 함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발생합니다. 어른의 귀감이었던 나나미 켄토는 마히토의 손에 처참하게 사망합니다. 쿠기사키 노바라 역시 마히토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사실상 리타이어합니다.
최악의 상황은 이타도리 유지 자신에게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전투 중 강제로 스쿠나에게 몸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맙니다. 스쿠나는 깨어나자마자 시부야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대량 학살을 자행합니다. 이타도리는 자신의 몸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참상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타도리 유지는 시부야 사변을 겪으며 완전히 무너집니다. '올바른 죽음'을 추구했던 그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타인의 '올바르지 않은 죽음'을 대량 생산하는 원흉임을 깨닫습니다. '주술회전'의 핵심 서사는 주인공의 신념이 이토록 처절하게 파괴되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이토록 어두운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주술회전'의 이토록 어둡고 절망적인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인기 비결은 단연 압도적인 '스타일'입니다. 제작사 MAPPA는 원작의 어두운 분위기를 감각적인 영상미와 결합했습니다.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역동적이고 주력을 활용한 전투는 화려합니다. 특히 영역 전개 연출은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 조형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죠 사토루라는 절대적 강자의 카리스마 이타도리 유지의 긍정적인 매력 나나미 켄토가 보여준 현실적인 어른의 모습 등 각 캐릭터가 뚜렷한 팬덤을 구축했습니다.
또한 '주술회전'은 독자들의 예상을 배신하는 과감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보정이나 편의주의적인 전개를 거부하고 핵심 인물들을 가차 없이 죽이거나 절망으로 몰아넣습니다. 이 예측 불가능한 비극성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존재합니다. '고죠 사토루'라는 캐릭터가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중심 사건(시부야 사변) 자체가 그를 '어떻게 봉인하는가'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다른 캐릭터들의 활약이 고죠의 부재라는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한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원작의 전개가 빨라지면서 방대한 설정과 수많은 캐릭터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고 소모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저주 속에서 '올바른 죽음'을 묻다
'주술회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과연 '올바른 죽음'은 존재하는가. 선의만으로 타인을 구할 수 있는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
시부야 사변 이후 이타도리 유지는 더 이상 순진한 이상을 좇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저주를 짊어진 하나의 '부품'임을 받아들이고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갈 뿐입니다. '주술회전'의 어두운 매력은 이처럼 이상이 부서지고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처절한 몸부림에서 나옵니다. 화려한 액션과 어두운 철학이 공존하는 이 작품의 인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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