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서사의 숨은 공신 버릴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강철의 연금술사'가 완결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명작'이라 불리는 이유를 꼽으라면 단연 입체적인 캐릭터들입니다. 이 작품의 팬들에게 "최애 캐릭터가 누구냐"고 물으면 답은 놀랍도록 다양하게 나뉩니다. 주인공인 엘릭 형제는 물론이고 로이 머스탱 윈리 록벨 심지어 적대 세력인 호문쿨루스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팬덤이 확고합니다.
많은 소년 만화가 주인공의 성장에만 집중하는 것과 달리 '강철의 연금술사'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단 한 명의 캐릭터도 소모품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군인이든 정비사든 복수자든 모든 인물이 자신만의 신념과 사연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얽히며 '등가교환'이라는 대주제를 완성해나갑니다. 오늘은 이 완벽한 태피스트리를 직조하는 엘릭 형제와 매력적인 조연들 그리고 호문쿨루스의 매력을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죄와 속죄의 여정 강철의 엘릭 형제
'강철의 연금술사' 이야기는 '엘릭 형제'라는 두 개의 축으로 움직입니다. 형 에드워드 엘릭은 12세에 국가 연금술사가 된 천재지만 그 본질은 다혈질에 오만하고 키 이야기에 민감한 소년입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금기를 범해 동생의 몸을 빼앗았다는 깊은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강철'이라는 이명처럼 단단하게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동생을 되찾겠다는 속죄의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에드는 자신의 연금술 실력을 과신했지만 여행을 통해 세상의 거대함과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으며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동생 알폰스 엘릭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육체를 잃고 거대한 갑옷에 영혼이 정착된 그는 언제나 침착하고 상냥하며 형의 폭주를 말리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알폰스 역시 싸움 속에서 고뇌합니다. 자신이 정말 존재하는지 혹시 형이 만들어낸 가짜 기억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합니다. 육체를 잃었기에 음식 맛을 보거나 따뜻함을 느끼는 평범한 행복을 누구보다 갈망합니다. 갑옷이라는 비인간적인 외형과 달리 가장 인간적인 마음을 지닌 그의 모습은 '강철의 연금술사'가 가진 비극성을 상징합니다. 이 두 형제는 서로의 죄책감이자 구원이며 서로가 있기에 절망적인 여정을 버텨내는 완벽한 파트너입니다.
형제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조력자들
'강철의 연금술사'의 매력은 엘릭 형제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들을 둘러싼 조연들은 각자 독립된 주인공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불꽃의 연금술사' 로이 머스탱 대령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위로 올라가겠다"는 야망을 공공연히 드러내지만 그 이면에는 이슈발 내전에서 동료를 잃은 아픔과 국가를 바로 세우겠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그의 곁을 지키는 리자 호크아이 중위와의 깊은 신뢰 관계 그리고 휴즈 중령을 잃은 슬픔은 또 하나의 감동적인 서사를 이룹니다.
형제의 소꿉친구이자 오토메일 정비사인 윈리 록벨은 이 작품에서 '일상'과 '희망'을 상징합니다. 그녀는 연금술사가 아니지만 자신의 기술로 망가진 에드의 팔다리를 고칩니다. 그녀는 형제가 싸우고 돌아올 수 있는 '귀환처'가 되어줍니다. 특히 부모를 죽인 원수 스카를 마주하고도 증오 대신 용서를 택하는 그녀의 성장은 '강철의 연금술사'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호완의 연금술사' 알렉스 루이 암스트롱 소령은 근육질의 개그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가문의 명예와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고뇌하는 진지한 군인입니다. 이슈발의 복수자인 스카 역시 처음에는 악역처럼 등장했지만 자신의 신념과 복수가 충돌하며 결국 형제와 손을 잡는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외에도 스승 이즈미 커티스 싱에서 온 린 야오와 란팡 등 모든 조연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아버지'의 일곱 가지 죄악 호문쿨루스
'강철의 연금술사'의 적대 세력 '호문쿨루스'는 단순한 악역이 아닙니다. 이들은 '아버지'라 불리는 존재 플라스크 속의 난쟁이가 자신에게서 분리해 낸 7대 죄악(오만 나태 질투 탐욕 색욕 폭식 분노)의 감정 그 자체입니다.
이들은 각자의 죄악에 극도로 충실합니다. '러스트(색욕)'는 요염한 모습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조종하지만 결국 머스탱의 불꽃에 집요하게 불타며 최후를 맞습니다. '글러트니(폭식)'는 모든 것을 삼키려 하지만 그 본질은 잃어버린 러스트를 찾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입니다. '엔비(질투)'는 인간을 질투하고 경멸하며 분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자신의 비참한 본모습을 들키고 맙니다. '프라이드(오만)'는 첫 번째 호문쿨루스로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가장 잔혹하고 오만한 그림자 능력을 사용합니다.
호문쿨루스는 불사에 가까운 육체와 강력한 능력을 가졌지만 결정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혼이 불완전하며 '아버지'의 의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엘릭 형제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면 호문쿨루스는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거나(그리드) 혹은 인간을 경멸하는(엔비 프라이드) 존재로서 형제의 거울상 역할을 합니다.
인간 찬가 대 죄악의 격돌 엘릭 형제 vs 호문쿨루스
'강철의 연금술사'의 전투는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엘릭 형제'로 대표되는 인간의 의지와 '호문쿨루스'로 대표되는 죄악의 충돌입니다. 호문쿨루스는 인간을 벌레처럼 여기며 어리석고 나약하다고 비웃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 인간의 '예측 불가능성'과 '유대' 그리고 '의지'에 패배합니다.
탐욕의 그리드는 '아버지'에게 흡수되었다가 다시 태어난 후 린 야오와의 우정을 통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에 자신의 의지로 '아버지'를 배신하며 린을 구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분노의 킹 브래들리는 완벽한 통치자이자 검사였지만 자신의 삶이 '아버지'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한계에 분노했습니다. 그는 인간인 스카와의 처절한 싸움 끝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최후를 인정합니다.
반면 엘릭 형제는 여행을 통해 '등가교환'이 모든 것의 법칙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대가 없이 받은 부모님의 사랑 동료들의 도움처럼 '1을 주면 10으로 돌려주는' 인간관계의 가치를 배웁니다. 호문쿨루스와의 싸움은 결국 자신의 죄와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불완전한 인간의 의지가 완전해 보였던 '죄악' 그 자체를 이기는 과정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캐릭터들의 완벽한 조화
'강글의 연금술사'가 명작인 이유는 이 모든 캐릭터가 '엘릭 형제'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쓰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이 머스탱은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윈리는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스카는 자신의 복수와 화해의 길을 걷습니다. 호문쿨루스조차 각자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모여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거대한 세계를 이룹니다.
현실적인 평가를 하자면 이 작품의 캐릭터 조형은 거의 단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캐릭터의 수가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인물이 선하거나 각자의 신념이 확고하다는 점입니다. 즉 비열하거나 이해타산적인 속물 캐릭터가 거의 없어 때로는 너무 이상적인 '착한' 세계관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몇몇 부패한 군인들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을 흔들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강철의 연금술사'가 전하고자 하는 인간 찬가라는 주제를 강화하는 장치입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는 매력적인 조연들과 자신의 죄를 마주하는 엘릭 형제 그리고 비극적인 악역 호문쿨루스까지 이들의 완벽한 조화는 '강철의 연금술사'를 불멸의 걸작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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